KBS1 인간극장 엄지 어멍과 아홉 오누이

엄지 어멍과 아홉 오누이
붙잡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붙잡히지 않는 기억.
치매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흐릿해진 기억을
다시 돌려드리기 위해 똘똘 뭉친 9남매가 있다.
그 주인공은 ‘엄지 어멍’ 오연옥(93) 할머니와 그녀의 보물인 아홉 오누이다.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마주 보며 살아온 오연옥 할머니.
스무 살에 만난 잘생긴 영감님은 동네 이장일로 바빠 돈벌이엔 무심했고,
그 바람에 생계를 독박으로 짊어진 할머니는
슬하에 1남 8녀를 건사하기 위해 해녀로 전복죽 장사로 일생을 보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성정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연옥 할머니에게
사람들은 작지만 제일 단단한 엄지손가락을 닮았다며 ‘엄지 어멍’이라 불렀다.
그토록 강인한 어머니, 연옥 할머니에게도 ‘영원’은 없었다.
아흔을 넘어서면서부터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속을 헤매던 어머니는
결국 3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
연옥 할머니는 더 이상 혼자서 생활하실 수 없게 됐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슬픈 현실에 백기를 드는 대신
아홉 명의 자녀들은 똘똘 뭉쳐 이 난관을 극복해보기로 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혼자 둘 수 없는 어머니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것.
아직은 모두 경제활동을 하는 상황이라
누구 한 사람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수도
그렇다고 어머니를 벌써 시설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를 맞댄 끝에 가족들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하나도 둘도 아닌 ‘아홉’ 명의 오누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연옥 할머니 집!
때로는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고 외치는 연옥 할머니지만
자식들이 있어 누구보다 든든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월에 녹슨 어머니의 기억을 붙들고 눈물만 흘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와의 새로운 추억 쌓기에 여념이 없는 자녀들.
자녀들과 새로운 기억의 퍼즐을 한 조각씩 만들어가는
‘엄지 어멍과 아홉 오누이’의 한 편의 동화 같은 일상을 들여다본다.